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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로그/홈쿡, 홈카페

2일차 홈로스팅 기록 (feat. 결점두 고르기)

by 희플링 Heepling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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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건대, 결혼하고 한국에 다시 돌아오길 바랬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서 한국 음식을 많이 그리워하지는 않도록 요리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독학으로 요리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의지박약이므로 첫 스텝은 학원에서 떼줘야 했다. 한식, 중식 조리사 자격증은 내게 전혀 쓸모없지만 이제는 내가 만든 요리를 먹으며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맛있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으니 조리사 자격증 과정 자체는 유용했다고 말하고 싶다.

 

 

주한미군과 그 가족은 코시국 초반 1년(++) 동안 커피숍에 못 간다는 지침이 있던 때가 있었다. 그 틈에 남편과 나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입했고 여태껏 잘 사용하고 있다.

평소에는 온라인으로, 혹은 대도시에 갈 때마다 원두를 구매했는데, 한번은 평택역 근처에서도 원두 판매처를 뚫어보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다. 마침 집에 원두가 똑 떨어졌고, 서둘러 원두 판매하는 곳을 찾으려니 옵션이 그리 많지 않았다. 평택역 근처 우리가 좋아했던 커피숍은 원두를 따로 판매하지 않거나 대용량으로만 판매했고, 차선책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카페에서 원두를 구매했다.

마음이 급하니 원두 구입 전 카페를 둘러본다던가, 미리 커피를 주문해보자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200g 단위로도 원두를 판매하냐 물었고, 원래는 대용량으로만 판매하지만 특별히 200g만 판다길래 두 번 생각 않고 원두를 구매했다.

원두를 선구매하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숍 내부를 둘러봤는데, 이런! 로스터기 주위에 날파리가 그득하다. 주문한 아메리카노는 탄 맛 밖에 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그곳에서 주문한 원두로 만든 커피를 한 모금 먹더니 10점 만점에 1점 주기도 아까운 원두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관리 안되던 불청결한 로스터기와 탄 맛 밖에 안 나던 원두의 충격에서 나는 여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분명 좋은 곳이 있겠지만 나는 이후로 평택에서 원두 판매처를 뚫겠다던 생각은 조용히 버리고 안전하게 프릳츠, 블루보틀, 커피리브레, 수원의 그래비테이트 원두만 구입해서 마셨다.

 

그런데 원두 값이 은근 장난 아니게 많이 나간다. 특히 블루보틀…!! 스타벅스처럼 블루보틀에도 회원제가 있었다면 충성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도저히 소속감이 생기지 않는다.

원두 값도 값이고, 무엇보다 미국에서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요리를 배웠던 것처럼, 다음에 우리가 어디로 이사를 가든 집 근처에서 원두 판매처를 찾느라 고생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홈로스팅에 욕심이 났다.

 

 

이런 이유로 홈로스팅에 관심이 있었지만 귀찮음을 극복할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뭐든 구매하면 이 귀차니즘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가 로스팅기를 샀다. 팝콘, 깨를 볶는 기기인데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약 오만 원에 샀다.

 

 

 

 

1. 홈로스팅 1회 차 : 오만 원 떡 사 먹은 썰 ㅋ

▲ 생두와 팝콘로스터

 

조작법은 단순하다.

기기를 켜고, 온도 조작 버튼을 돌리면 원하는 온도까지 온도가 올라간다.

 

 

 

 

 

▲ 생두를 넣는다.

 

일단 한 번 밖에 써보지 않았지만 결과는 실패다.

한 후기를 참고해 낮은 온도에서 점차 온도를 높여 로스팅 했고, 온도 떨어지게 뚜껑을 너무 자주 열었으며, 쫄보인 나는 고온에서 생두를 가만두지 못하고 곧 기기를 껐더니 기기를 약 40분을 돌렸음에도 원두는 볶이지 않았다.

내 잘못도 잘못이지만, 기기 자체의 불편함도 있기 때문에 당분간 팝콘로스터로 생두를 볶을 일은 없을 예정이다.

 

팝콘로스터 단점1

: 아무리 온도 조작 버튼이 있다지만 집에 비접촉식 온도계가 없다면 온도가 정확한지 알 수 없다.

우리집 오븐도 오븐 온도와 실제 온도가 다르다. 오븐에서 예열이 다 되었다고 표시되어도 사실 그 온도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따로 온도계를 추가 구매해서 오븐 안에 두었다. 팝콘로스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비접촉식 온도계가 없어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다른 기기로도 비슷한 맛을 내고 싶다면 온도계를 추가로 구입해야 할 것 같다.

 

팝콘로스터 단점2

: 열판과 기기가 분리되지 않아 세척이 힘들다.

그 덕에 세제로 뽀득뽀득 씻지 못하고, 치킨타올에 물을 적셔 판을 닦았다.

 

 

 

 

 

▲ 40분 볶은 후 원두 상태

 

이 상태로는 어차피 못 먹을 것 같아서 버리는 셈 치고 오븐에 넣고 다시 볶았다.

 

 

 

 

 

▲ 처음 오븐에 넣었을 때 원두 상태
▲ 230-200도 사이에서 원두를 뒤적거리면서 구웠다. 10분 후.
▲ 20분 후.
▲ 오븐에 넣기 전보다 색은 훨씬 그럴듯하다!

 

색은 그럴듯하게 나왔지만 맛은 없다.

아메리카노로는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시럽 왕창 넣고 시럽 맛으로 커피를 마셔야 했다.

애초에 제 멋대로 한 시간 이상 볶은 원두가 맛이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평택역 근처에서 구매했었던, 탄 맛 밖에 나지 않던 그런 원두 맛이었지만 적어도 내 오븐에는 날파리는 날아다니지 않으니 그럴듯한 색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2. 홈로스팅 2회 차 : 오븐 로스팅

2회 차는 오븐만 사용해 로스팅했다.

오븐에서 원두를 로스팅할 때는 원두가 고르게 익을 수 있도록 계속 뒤집어 줬는데, 그 때문에 로스팅하는 동안 딴짓을 못 했다. 그리고 원두를 뒤집기 위해 오븐 문을 열면 오븐 온도가 떨어진다.

 

▲ 원두가 그럭저럭 볶아졌다 싶어서 꺼내 식혔는데, 막상 식히고 다시 보니 원두 고랑이 희멀건한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 그래서 다시 볶았다. 육안으로 봤을 때는 벌어진 고랑이 조금더 다물어지고, 그 색도 검게 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다.

 

230도로 오븐을 예열하고, 215도에서 25분 동안 생두를 구웠다.

중간중간 계속 오븐 온도를 낮추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 180도로 온도를 내리기도 했고, 원두를 뒤집는다는 이유로 오븐 문을 계속 여닫느라 온도가 더 떨어졌기 때문에 실제 온도는 200도 보다 낮았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1차 크랙이 막 시작하는 소리만 들렸고 그 이상은 진행되지 않았다. 다음에는 더 대담하게 온도를 높여야겠다.

 

 

 

 

3. 결점두 찾기

2회 차에서도 식힌 원두를 다시 볶는 등, 그 과정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회 차에서 로스팅한 원두는 1회 차와 달리 커피의 탄 맛이 훨씬 덜 했다. 결점두를 제거했던 것이 큰 차이를 만들었던 것 같다. 

 

▲ 아직은 한 번에 120g씩만 볶고 있다.
▲ 중간에 내 실수로 버린 원두가 좀 있다. 그걸 감안한다면 생두를 120g 볶고 결점두를 제거하니 95~100g 원두만 남았다.

 

유튜브를 이것저것 보는 바람에 출처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영상에 의하면 '원두를 볶은 후에 훨씬 더 쉽게 결점두를 골라낼 수 있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로스팅 후에 결점두를 골라냈다.

 

 

 

내가 제거한 결점두는 아래와 같다.

A.  누가 봐도 결점두

▲ 안이 텅 비었다.
▲ 팝콘인줄. 팝콘처럼 뻥 튀김
▲ 내가 아는 원두 모양이 아님
▲ 원두에 금 갔다.

 

 

B. 미묘한 결점두

▲ 앞면은 멀쩡하나 뒷면은 다른 원두와 달리 색이 너무 밝거나, 쭈글쭈글하거나, 실버스킨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았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결점두를 찾던 순간에 이건 결점두라고 생각함.

 

120g이면… 약 4일에 한 번씩 로스팅을 해야 하는 양이다.

로스팅 후 원두를 며칠 숙성시켜야 커피가 맛있다는데 당분간은 적정 온도를 찾는 것만 생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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